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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2 (목)

이나영·정은채·이청아의 연대…‘아너: 그녀들의 법정’ 묵직한 질문 남기며 종영

디지털 성착취 실체 파헤친 여성 변호사 3인…현실을 직시한 결말로 깊은 여운

 

ENA 월화드라마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 마지막까지 묵직한 질문을 남기며 6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범죄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른 이 작품은 성착취 피해자들이 살아가는 시린 현실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뜨거운 연대를 조명하며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10일 방송된 최종회는 수도권 4.9%, 전국 4.7%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사건을 끝까지 추적해온 여성 변호사 3인의 치열한 싸움은 시청자들에게 인간의 존엄과 명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극의 중심에는 공익 로펌 L&J를 이끄는 세 변호사 윤라영, 강신재, 황현진이 있었다. 이나영, 정은채, 이청아가 연기한 세 인물은 디지털 성착취 플랫폼 ‘커넥트인’을 둘러싼 거대한 권력 구조에 맞서며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 왔다. 최종회에서는 범죄의 핵심 인물 백태주가 구축한 시스템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붕괴되는 장면이 그려졌다. 스마트시티 시연회장에서 기술 시연이 진행되던 중 강신재가 서버에 심어둔 장치가 작동하면서 백태주의 음성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이를 통해 비밀 성매매 애플리케이션 ‘커넥트인’이 피해자들을 유인해 착취하는 범죄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현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같은 시각 서버실에 감금된 강신재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송출되면서 사건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윤라영은 대중 앞에서 정의라는 이름 뒤에 숨겨졌던 범죄 구조를 정면으로 폭로하며,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권력자들의 실체를 고발했다. 그 사이 황현진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강신재의 위치를 추적해 가까스로 구조에 성공했다.

 

결국 시스템은 붕괴됐고 사건의 중심 인물이었던 백태주는 사라졌다. 이후 시신으로 발견된 정황이 전해졌지만, 강신재가 그의 누나 서지윤의 봉안함 앞에 놓인 테라리움을 발견하며 생존 가능성을 암시하는 여지가 남았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결말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시켰다. 하지만 빌런의 몰락이 곧 정의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L&J 로펌은 피해자들을 대리해 법정 싸움을 이어갔지만, 형사 재판 1심에서 이용자들의 성매매 혐의는 벌금형에 그치며 한계를 드러냈다. 기대와 달리 가벼운 처벌로 끝난 판결은 현실의 복잡한 구조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에 윤라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 ‘커넥트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제도적 변화를 요구했고, 민사소송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는 장기전을 선언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 이어졌다. 복수를 위해 범죄를 저질렀던 딸 한민서가 자수한 뒤에도 그는 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상처가 남은 모녀 관계는 단번에 회복되지 않았지만, 윤라영은 평생이 걸려도 기다리겠다는 다짐으로 딸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강신재 역시 자신의 삶을 내려놓는 결정을 했다. 그는 무너진 기업 ‘해일’의 대표 자리를 맡아 막대한 책임을 감당하기로 했다. 황현진은 여전히 피해자들 곁에서 법정과 일상을 오가며 그들과 함께 싸우는 삶을 이어갔다. 세 변호사의 연대는 사건의 해결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폭행을 당한 성범죄 피해자가 L&J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도와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 것이다. 사건이 끝나도 피해는 계속된다는 현실을 직시한 결말이었다. 판타지적 해피엔딩 대신, 지금도 계속되는 문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연출을 맡은 박건호 감독은 제작 초기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 이후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낙인과 침묵의 압박을 입체적으로 그리려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드라마는 범죄 자체보다 사건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며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촘촘한 미스터리 구조를 설계한 박가연 작가의 각본과 감독의 연출이 시너지를 이루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고, 통쾌한 응징보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서사는 오히려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며 매회 시청률 상승을 견인했다.

 

마지막 회에서는 ‘커넥트인’ 피해자들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그려졌다. 누군가는 학교로 복학했고, 또 다른 이는 카페 매니저로 일상을 되찾았으며, L&J 인턴으로 새로운 길을 걷는 인물도 있었다. 상처를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지만,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였다.

 

드라마 ‘아너: 그녀들의 법정’은 법정 승리나 복수의 쾌감이 아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엄을 이야기했다. 부서질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연대, 그리고 피해자 편에 서겠다는 선택이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6주 동안 이어진 여정은 끝났지만, 드라마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명예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극 속 인물들뿐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사진 : 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