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강렬한 에너지로 객석의 숨소리까지 장악하던 배우는 마이크가 꺼진 뒤에야 비로소 본연의 소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뮤즈온에어 ‘팬터뷰’로 마주한 배우 이세헌은 무대 위 모습과는 또 다른 맑고 진솔한 결을 지닌 배우였다.
데뷔 2년 차, 자신을 ‘햇병아리’라 부르는 겸손함 뒤에는 그 어떤 베테랑보다 단단하고 치열한 연기 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보다 그 이면의 진정성을 먼저 고민하는 그가 들려주는, 꾸밈없고 단단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최근 뮤지컬 <프라테르니테>의 ‘제르베’ 역으로 무대 위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이세헌은, 공연이 없는 날이면 대개 고요한 일상을 선택한다. 스스로를 ‘집돌이’라 칭할 만큼 지인들에게 “참 재미없게 산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에게 이 정적인 시간은 결코 비어있는 공백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숨 쉬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고 정돈하는, 배우로서 꼭 필요한 ‘준비의 연장선’인 셈이다.
그는 "예전에는 다음 날 공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서도, "요즘은 쉬는 것 자체도 배우 활동의 중요한 일부라고 믿는다"며 한층 성숙해진 마음가짐을 전했다. 하지만 그의 휴식은 완전한 멈춤이 아니다. 쉬는 시간에도 전날 공연 녹음본을 모니터링하며 자신의 연기를 치밀하게 복기하는 모습에선 '햇병아리'라는 겸손한 자칭 뒤에 숨겨진 신인답지 않은 진중함이 묻어났다.
그간 순수하고 청년미 넘치는 캐릭터로 관객들과 만나온 이세헌은, 향후 도전하고 싶은 영역으로 뜻밖에도 ‘악역’을 꼽았다. 자신만의 서사와 명확한 당위성을 가진 악역을 통해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는 포부다. 단정하고 맑은 얼굴 뒤로 어떤 서늘한 얼굴을 숨겨두었을지 배우 이세헌의 변신에 기대가 모이는 대목이다.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으로는 뮤지컬 <일 테노레>를 꼽았다. 홍광호 배우의 무대를 보며 깊은 전율을 느꼈다는 그는 "언젠가 꼭 그 작품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조심스럽게 품고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특히 '연기 천재'와 '노래 천재' 중 하나를 선택해달라는 재치 있는 질문에 그는 '연기 천재'를 택했다. "뮤지컬 배우는 결국 배우"라는 그의 답변에선, 노래로 감정을 전달하고 서사를 완성하는 예술의 본질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배우로서 마주하는 치열한 성장통에 대해서도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대가 마음처럼 풀리지 않거나 컨디션 난조로 불안함이 엄습할 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다름 아닌 팬들이었다. 그는 "팬분들이 보내주시는 따뜻한 편지 덕분에 매일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는다"며, "부족한 모습까지 품어주시는 마음을 보며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다"고 묵직한 감사를 전했다.
이어 팬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넘버로 뮤지컬 <아나키스트>의 ‘내 안에 나라를 세워’를 꼽은 그는, “지도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길 바란다”는 가사 한 구절을 흔들림 없는 성취와 깊이 있는 음색으로 가득 채워냈다. 짧은 한 구절이었지만, 팬들의 앞날을 향해 전하는 위로의 선율에는 무대의 공기를 단숨에 바꾸는 배우 이세헌만의 밀도 높은 성량과 진심 어린 응원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그가 반드시 지키는 루틴은 ‘무대 산책’이다. 일찍 공연장에 도착해 텅 빈 무대를 홀로 거니는 이 시간은, 낯선 공간이 비로소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집’이 되길 기다리는 그만의 경건한 의식이다. 아무도 없는 무대 위를 묵묵히 걷는 발걸음마다, 그날의 공연을 향한 간절한 마음과 배우로서의 본질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특히 공연 직전 무대 중앙에서 올리는 기도는 이제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그는 "오늘 무대 위에서 완벽한 집중력으로 제르베로서 살아 숨 쉬게 하시고, 귀한 걸음을 해주신 관객분들에게 이 공연이 감동과 위로가 되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빌며 마음을 정돈한다. 무대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그의 진심이 닿지 않는 공간은 없었다. 마이크 테스트를 할 때조차 실제 넘버인 '빵 송'을 가창하며 관객과의 동선을 꼼꼼히 살피는 모습에선, 무대 위 모든 요소를 치밀하게 챙기는 그만의 세심한 프로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데뷔작 <결투> 당시, 너무 떨린 나머지 무대 위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던 신인은 어느덧 객석의 눈빛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확인하며 함께 호흡하는 배우로 성장해 있었다. 긴 시간 이어진 인터뷰 내내 질문마다 정성을 다해 답변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선, 무대를 대할 때 쏟아붓는 그만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디 한곳에 멈춰 있지 않고, 늘 최선을 다해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는 배우가 되겠다"며 자신을 믿어주는 이들을 향한 책임감 있는 약속을 남겼다. 오늘의 겸손함이 내일의 깊이가 되고, 매일 무대 위에서 올리는 기도가 머지않아 커다란 울림이 될 것임을 알기에, 배우 이세헌이 묵묵히 그려갈 앞으로의 궤적에 더욱 깊은 기대를 걸게 된다.
영상 : 배우 이세헌 인터뷰 [뮤즈온에어]
사진 : 배우 이세헌 인터뷰 [뮤즈온에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