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이자 교수, 그리고 딸이자 언니로서의 삶. 해이는 지난 4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 여정을 조심스럽게 풀어놓았다. 동생 소이는 언니의 곁에 조용히 앉아, 그 서사를 함께 지켜봤다. 두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 가족, 꿈, 좌절, 그리고 회복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했고, 그 진심은 방송을 보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도달했다.

가수 ‘해이’로 2000년대 초반 ‘쥬 뗌므’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린 그녀는 이후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며 다채로운 이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2010년 남편 조규찬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영어가 익숙했던 그녀였지만, 대학의 원서 한 장조차 읽기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야 했다. “한 장을 읽는 데 3~4시간씩 걸렸다”는 해이의 고백은 그저 외국 생활이 아니라, 생존의 무게를 지닌 하루하루였음을 말해줬다.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해이는 2018년부터 본격적인 교수직 도전에 나섰다. 무려 162개의 대학에 지원서를 냈고, 그중 대부분은 ‘불합격’이라는 단어로 돌아왔다. “자신감이 있었지만, 계속된 거절에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됐다. 끝까지 버티는 게 정말 어려웠다.” 그렇게 지난한 시간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말기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소식을 듣게 된 해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빠 때문에 포기하지 마라. 그건 아빠를 위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고, 그 말은 해이에게 마지막 용기를 불어넣었다. 해이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교수직을 준비했고, 결국 미국 주립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임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운명은 잔혹했다. 아버지의 위독 소식에 급히 귀국했지만, 공항에서 전해 들은 소식은 “세 시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 한마디였다. 해이는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고 담담히 이야기했지만, 그 눈빛엔 깊은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날 방송엔 동생 소이도 깜짝 등장했다. 배우이자 1인 밴드 라즈베리필드로 활동 중인 소이는 “언니는 나의 첫 번째 롤모델이었다”며, 어린 시절부터 해이를 따라 노래를 하고, 그녀의 그림자를 밟듯 음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언니처럼은 못하겠어서 랩을 했어요”라는 말은 자조가 아닌, 사랑의 표현이었다. 언니를 존경하며 살아온 동생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스튜디오에서는 두 자매가 아버지가 생전에 직접 써놓은 시를 함께 낭독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낭독이 끝나자 해이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을 음악의 길로 이끈 곡 ‘Park of Your World’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고 청아한 보컬은 가수 해이의 진면목을 보여주었고, 조용히 함께 따라 부른 소이의 목소리는 이들 자매의 유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날 방송은 단지 스타의 성공기를 다룬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가족의 의미, 삶에서의 실패와 선택, 그리고 이겨냄의 기록이었다. 해이는 끝으로 “이제는 종신 교수라는 목표를 향해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며, 앞으로도 음악과 학문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고 밝혔다.
두 자매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사랑과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해이와 소이의 서사는 많은 이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사진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