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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9 (목)

[GV] 이은선 저널리스트와 짚어본 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네오리얼리즘의 유산과 여성의 주체성이 만나는 찬란한 지점
흑백의 미학 속에 설계된 여성들의 목소리, 그 묵직한 여운에 대하여...

 

지난 17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개최된 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메가토크는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의 혜안을 통해 이탈리아 현대 영화가 고전의 유산을 어떻게 동시대적 페미니즘 서사로 치환했는지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장이 되었다.

 

 

파울라 코르텔레시 감독의 이 데뷔작은 2023년 이탈리아 박스오피스에서 이른바 ‘바벤하이머’ 열풍을 잠재우며 자국 영화 역대 흥행 10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바벤하이머는 전 세계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의 합성어로 성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대작이 동시 개봉하며 일으킨 글로벌 흥행 현상을 일컫는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이 거대한 할리우드 신드롬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본 작이 복고적 향수를 자극하는 서사를 거부하고 장르적 관습을 비트는 전복적 쾌감을 선사했기에 가능한 성취였다.

 

 

이은선 저널리스트는 본 작의 뿌리를 1940년대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네오리얼리즘에서 찾는다. 로셀리니와 데 시카가 정립한 이 사조는 거리의 비전문 배우를 기용해 전후의 궁핍과 남성 노동계급의 투쟁을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는 50년대 등장한 핑크 네오리얼리즘의 낙천적 코미디 톤을 차용하되 그 이면에 은폐되었던 가정 내 계급 투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카메라가 거리의 부조리에서 집안 내부의 가부장적 압제로 시선을 옮기면서, 영화는 고전적 양식미와 현대적 젠더 의식을 결합한 독창적인 장르적 변주를 완성한다.

 

 

영화는 델리아(파울라 코르텔레시)의 일상을 4:3 화면비의 비좁은 프레임에 가두며 시작된다. 이는 여성을 사회적·가정적 틀에 구속하는 시대적 공기를 시각화한 장치다. 델리아가 문 밖으로 나설 때 비로소 확장되는 화면비는 인물의 물리적 이동이 곧 심리적 해방의 전조임을 암시한다.

 

특히 폭력의 순간을 왈츠 리듬의 뮤지컬 시퀀스로 연출한 지점은 폭력이 일상화된 비극을 미학적 역설로 표현하며 관객에게 서늘한 위아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40년대 배경과 충돌하는 현대적 블루스와 힙합 사운드트랙의 배치는 이 서사가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2026년 현재의 관객과 실시간으로 공명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 영화의 가장 변별력 있는 지점은 이은선 저널리스트가 ‘기분 좋은 배신’이라 명명한 결말의 반전 구조에 있다. 극 중 델리아가 첫사랑과의 도피를 준비하는 듯한 일련의 과정은 전형적인 로맨틱 구원 서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영화는 델리아의 종착지를 남성의 품이 아닌 투표소로 설정함으로써, 사적 구원을 공적 권리 획득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격상시킨다. 1946년 이탈리아 여성 참정권의 실질적 행사는 델리아 개인의 삶을 넘어 딸 마르첼라로 상징되는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유산이자 가부장적 악순환을 끊어내는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동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입을 다물고(A bocca chiusa)’라는 곡과 실제 1946년 투표장에 모인 여성들의 기록 영상은 이 작품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가 연대에 있음을 웅변한다. 이탈리아 사회를 뒤흔든 '줄리아 체케팅 사건(2023년, 전 남자친구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대생 사건)'과 그에 반발한 '침묵하지 않는 시위'는 80년 전의 기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투쟁의 근거임을 시사한다. 이은선 저널리스트는 “권리는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것”이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인용하며 영화 속 델리아의 한 표가 지닌 무게가 2026년의 우리에게 어떤 내일을 준비하게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흑백의 미학 속에 고도로 설계된 장치들을 통해 여성이 한 명의 시민으로서 주체성을 회복하는 숭고한 과정을 그려낸 수작이다. 특히 계단 위에서 남편을 내려다보는 델리아의 찰나의 표정은 타인의 기분에 의해 자신의 세계가 결정되지 않음을 선포하는 날카로운 정치적 선언과 같다.

 

과거의 기록에서 길어 올린 이 서사는 동시대의 사회적 균열을 파고들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1946년의 투표소로 향하던 여성들의 상기된 얼굴은 2026년 오늘날에도 유효한 용기와 연대의 이정표가 된다. 한 표의 무게가 약속하는 미래, 그리고 그 미래를 지탱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가장 찬란한 유산이다. 이처럼 영화가 던진 묵직한 질문들에 이은선 저널리스트의 혜안이 더해진 이번 메가토크는 관객들의 높은 몰입 속에 마무리되었다. 

 

 

영상 : 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메가토크 [뮤즈온에어] 

사진 : 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포스터 및 스틸컷, 이은선 저널리스트 [뮤즈온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