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영화 '하이파이브' 포스터 [(주)NEW]](http://www.museonair.co.kr/data/photos/20250626/art_17508199793283_551752.jpg)
강형철 감독의 신작 영화<하이파이브>는 무게 잡지 않는 초능력 영화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초능력자의 유쾌한 민낯”을 보여주는, 이 장르 안에서 보기 드문 톤 앤 매너를 지닌다. 장기 이식으로 인해 뜻밖의 능력을 얻게 된 다섯 명의 평범한 인물들이 만나 팀을 이루고, 함께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함께하는 삶’의 의미를 풀어낸다. 말 그대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강형철식 연대기의 귀환이다.
이재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유아인, 오정세, 진영(박진영) 등 충무로에서 개성과 연기력을 두루 인정받은 배우들이 총출동한 이 영화는 10~30대의 젊은 관객층과 가족 단위 관람객을 모두 끌어들이며 강형철 감독의 전작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 신의 손』 등에서 구축해온 대중성과 작품성의 균형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 즉, 강형철 감독 특유의 ‘모두를 위한 영화’ 정체성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사진 :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주)NEW]](http://www.museonair.co.kr/data/photos/20250626/art_17508199753729_0bcbc4.jpg)
영화는 간단한 시놉시스에서 출발한다. 심장, 폐, 간, 신장, 각막 등 장기이식을 받은 다섯 사람은 이식 이후 각기 다른 능력을 갖게 되고, 곧 서로의 ‘표식’을 통해 연결된다.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이 변화하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힘’을 나누기 위해 이들은 하나의 팀, ‘하이파이브’를 결성한다. 하지만 성격도, 가치관도 제각각인 이들이 충돌하며 겪는 갈등과 화합, 그리고 이들을 위협하는 강력한 존재(새신교 교주)와의 대결이 이야기의 중심 축을 이룬다.
![사진 :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주)NEW]](http://www.museonair.co.kr/data/photos/20250626/art_1750819977365_2ed225.jpg)
‘하이파이브’라 불리는 이 다섯 명은 태권 소녀 ‘완서’(이재인), 작가지망생 ‘지성’(안재홍), 프레시 매니저 ‘선녀’(라미란), FM 작업반장 ‘약선’(김희원), 그리고 힙스터 백수 ‘기동’(유아인)이다. 능력은 다르지만 모두가 ‘비자발적으로’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히어로라기보다 현실 속 누군가의 모습에 가깝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능력’이라는 요소를 자극적인 힘이나 무기화된 장치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이 능력은 갈등을 유발하고, 어울림을 방해하며, 때론 당혹감을 준다. 그러나 인물들이 이 차이를 이해하고, 조율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곧 ‘연대’라는 사회적 힘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은 한국 사회의 공동체성에 대한 유쾌한 은유이자 따뜻한 상상이다.
<하이파이브>는 장르적으로는 액션과 판타지, 그리고 코미디의 경계를 유영하지만, 정서적 질감은 오히려 멜로와 가족 드라마에 가깝다. 강형철 감독 특유의 익숙한 틀을 사용하면서도 독창적인 스타일을 부여하는 연출 감각은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써니』와 『스카우트』, 『과속스캔들』을 통해 보여줬던 감각적인 유머와 인간미 넘치는 연출은 『하이파이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SF적 요소와 일상의 리듬을 능숙하게 조율하며, 코미디와 감동을 교차시키는 타이밍은 역시 탁월하다.
또한 과거 『써니』가 1980년대 여성들의 우정을 통해 시대와 삶을 포착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에 애정을 기울이되, 그것을 무겁거나 진지하게 그리지 않는다. 가볍지만 얕지 않고, 유쾌하지만 허투루 소비되지 않는 인간적인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사진 :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주)NEW]](http://www.museonair.co.kr/data/photos/20250626/art_17508199766818_d2823a.jpg)
한편 연기 시너지는 영화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다. 이재인은 태권도 소녀 ‘완서’로서의 물리적 에너지와 감성적 균형을 동시에 갖춘 ‘완서’로서 눈에 띄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안재홍은 자신의 특기인 평범함 속의 진심을 잘 살려내며 유약하지만 정의감 있는 ‘지성’을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낸다. 라미란은 언제나처럼 안정된 연기로 극에 중심을 잡아주고 유쾌함과 생활 밀착형 캐릭터의 정점을 보여주며, 김희원은 엉뚱하지만 선한 ‘약선’을 인간적으로 풀어낸다. 특히 유아인은 내면의 자유로움과 외면의 무기력을 오가는 ‘기동’을 통해 초현실적 능력과 현대 청년의 방황을 절묘하게 겹쳐 표현하며 이번에도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오정세와 진영 역시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맡아 각기 다른 에너지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의 조합은 한 편의 드라마 시리즈처럼 유기적이고 흥미롭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는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하이파이브>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감정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장기 이식이라는 설정은 단순히 초능력을 부여하는 장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명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이 살아가는 ‘삶의 연결성’을 상징하는 도구로 읽힌다. 그리하여 이식자들이 모여 하나의 팀을 꾸리는 과정은 곧 연대와 공동체의 은유다. 특히 타인의 장기를 통해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이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성찰과 ‘우리가 함께일 때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따뜻한 상상은, 타인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현대 사회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능력의 유무가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던진다. 특히 현대 사회의 단절과 불신 속에서, 타인의 장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얻은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협력해 나가는 과정은 사회적 소외와 연대를 상징하는 강한 메타포로 읽힌다.
하지만 강형철 감독은 이처럼 영화 속 설정에 사회적 질문을 녹여내되, 그것을 교훈으로 설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과 해프닝, 그리고 감정적 공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메시지를 끌어낸다. 대중성과 메시지의 조화를 꾀하려는 이 균형감은 강형철이라는 이름이 곧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이파이브>는 CG와 특수효과 측면에서도 안정적인 수준을 보여준다. 각 인물의 능력을 표현하는 시각효과는 과잉되지 않으면서도 기능적으로 명확하며, 액션 시퀀스는 리듬과 구성이 탁월하다. 특히 중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펼쳐지는 협업 액션은 팀워크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잘 구현해낸 장면이다.
영화 <하이파이브> 각 인물은 단순히 ‘능력자’들의 이야기라기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성장의 드라마다. 외로운 청년,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규칙에 갇힌 중년 남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모두가 누군가의 일부로 살아가는 과정은, 결국 우리 모두가 서로를 통해 완성된다는 말을 건넨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우리는 그들의 마지막 ‘하이파이브’가 단지 승리를 축하하는 제스처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영화는, 충분히 따뜻하고, 충분히 감동적이다.
사진 : 영화 '하이파이브' 포스터 및 스틸컷[(주)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