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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2 (토)

[영화GV]김지운이 묻고 나홍진이 답하다… 영화 ‘호프’의 프레임 속에 담긴 연출의 층위

부감점에서 포착한 인간의 선의, 집요한 미장센으로 증명한 시네마의 본질!
아스팔트 위 말 액션부터 이틀 걸린 회상 신까지, 현장의 생생한 순간들

 

7월 29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호프'의 개봉 2주 차 GV는 나홍진, 김지운 두 감독이 영화의 내면을 밀도 있게 파헤친 자리였다. 사회자로 나선 김지운 감독과 연출을 맡은 나홍진 감독은 작품 내부를 가로지르는 철학적 레이어와 구체적인 연출 비하인드를 샅샅이 짚어갔다. 관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 앞에서 두 연출가는 개봉 이후의 소회부터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 미장센의 밀도, 시점 전복의 테크닉, 그리고 제작 현장의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대담을 이어갔다.

 

 

깐느 영화제 출품부터 시작해 쉬지 않고 달려온 나홍진 감독은 개봉 2주 차를 맞이한 감회를 묻는 김지운 감독의 질문에 이번 무대인사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무대 위에 올라 인사를 건네고 퇴장하는 정형화된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관객들의 반응과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즉각 수용하며 한층 가까이 투입되는 변화를 겪었다는 설명이다. 관객들의 요청에 머리띠를 착용하는 등 예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을 통해 환대한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지운 감독 역시 자신의 전작 '거미집' 당시 상황을 빗대며 최근 무대인사 현장에서 배우들과 감독들이 관객과 스킨십을 나누는 문화의 난이도와 재미에 대해 훈훈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출 철학으로 언급된 지점은 인류라는 종을 바라보는 나홍진 감독의 시선 전환이다. 나 감독은 시나리오 구상 당시 현실의 뉴스나 사건을 통해 접하는 인간의 세태를 우주적 차원 혹은 신적 관점이라는 까마득한 부감점 위에 놓아두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높이 올려다보거나 맞대응하는 구도보다는 신이나 우주라는 거대한 관점에서 기묘한 인간 군상의 몸부림을 내려다보는 시도다.

 

김지운 감독은 이러한 연출을 두고 전작 '곡성'의 분위기를 가져가면서도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추격자'의 역동적인 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나 감독은 과거 우순경 사건(1982) 취재 경험이나 로보트 태권브이 프로젝트 구상 등 수년간 쌓여온 풍부한 경험들이 복합적으로 이식되었음을 인정했다. 특히 김지운 감독이 오프닝에서 해남 마을의 산세를 천천히 훑으며 안으로 침투하는 카메라 워크를 '나홍진 영화에서 가장 매혹적인 서스펜스의 순간'으로 짚어내자, 나 감독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었던 어둠을 굳이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사건과 서스가 시작된다고 응답했다.

 

 

이 지점에서 두 감독은 불합리한 존재와 맞닥뜨렸을 때 캐릭터를 다루는 서로의 차이를 교차 검증했다. 김지운 감독이 삶의 불합리와 맞닥뜨렸을 때 인물을 수렁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그리는 편이라면, 나홍진 감독은 인물의 무지와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한 집착을 동력 삼아 엄청난 운동성과 스펙타클을 만들어낸다는 분석이다. 나 감독은 이에 덧붙여 악한 상황 속에서도 인물이 지닌 본능적인 '선의'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상업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전작 '곡성'이 세상의 불행을 겪은 이들에게 "이 재앙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위로하는 메시지였다면, '호프'는 한층 직관적이고 공동체적인 시선으로 돌아가 상대를 이해하려는 선의와 종교적·연대적 스탠스를 취할 때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영화적 기술과 플롯의 구조에 대해서도 대담이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과의 이전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던 "서사의 살을 빼고 백시내 디테일에 뼈대를 만들려 했다"는 발언에 대해 나 감독은 '장면화(Visualizing)'의 밀도를 극대화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서사의 뼈대를 언어적으로 길게 늘어놓기보다 프레임 내부의 미장센과 시각적 디테일, 인물의 운동성 자체에 서사와 사유를 집어넣었다는 뜻이다. 관객은 정보를 글로 전달받는 대신 화면에 찍힌 압도적인 장면을 통해 감정과 서사를 직관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후반부로 넘어가며 드러나는 시점의 스위치 연출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작품 초반 외계 존재가 등장한 이후 정석대로라면 외계인의 시점으로 관객을 옮겨가야 했으나, 연출자는 의도적으로 인간의 시점에 카메라를 고정해 두었다. 외계 존재들의 언어에 자막을 처리하지 않다가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번역 자막을 제시하는 방식은 관객이 서서히 타자의 내면으로 정서적 이행을 겪도록 만드는 세밀한 장치다. 내가 서 있는 관점에 따라 동일한 현상이 전혀 다른 윤리적·감정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경험을 스크린 위에 구현해 낸 셈이다.

 

 

관객 질의응답 및 배우 정호연의 질문으로 이어진 후반부에서는 현장의 생생한 제작 비하인드가 공개되었다. 나홍진 감독은 가장 어려웠던 촬영으로 임현식 배우와 함께했던 해수리의 회상 장면을 꼽았다. 평생 단막극과 드라마에서 방대한 대사를 소화해 왔던 대배우가 현장에서 원클래식 방식의 길고 정교한 영화 대사를 마주하며 당혹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결국 프롬프터를 설치하고 이틀에 걸쳐 공들여 촬영을 진행했으며, 현장 스태프들마저 감정에 몰입해 긴장했을 만큼 고난도의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반면 성기가 말에서 차로 옮겨 타는 고난도 액션 신은 의외로 수월하고 빠르게 마무리되었다고 전했다.

 

 

특히 폐쇄된 고가도로 위에서 펼쳐진 말 액션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아스팔트 위에서 말이 달리는 장면의 위험성과 시각적 충격을 높이 평가했다. 나 감독은 아스팔트 바닥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특수 완충재를 적용한 말발굽을 제작해 촬영에 임했으며, 배우 조인성의 과감하고 훌륭한 승마 연기가 더해져 다리 위에서의 아슬아슬한 명장면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기가 숲속에서 주먹밥과 김치를 허겁지겁 먹거나, 2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칠게 물을 마시는 장면의 연출 의도도 밝혀졌다. 이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죽여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기묘한 생명체로서의 인간, 그 처절한 '생존 본능과 의지'를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대담을 마무리하며 김지운 감독은 영화 후반부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내비쳤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마을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다시 진지를 구축하고 돌을 쌓아 올리겠다는 인물들의 처연한 대화,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성기가 계속해서 살아남아 앞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가 왜 '호프(HOPE)'인가를 증명하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해석이다. 나홍진 감독 역시 이러한 연출 의도와 해석에 깊이 공감하며 뜻을 같이했다.

 

김 감독은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 제작 환경이 위축되고 안전한 기획 위주의 작품들이 양산되는 악순환 속에서 '호프'가 보여준 스펙타클과 거침없는 폐기는 가뭄 속에 단비와 같다고 평가했다. "무엇이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극장이라는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압도적인 시네마틱 경험으로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절망의 폐허 위에서 다시 진지를 구축하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처럼, 영화 '호프'는 스크린 본연의 동력을 밝히며 관객들에게 잊히지 않을 진한 여운을 남겼다.

 

 

영상 : 영화 '호프' GV [뮤즈온에어]

사진 : 영화 '호프' 포스터 및 스틸, GV [뮤즈온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