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승목이 데뷔 36년 만에 생애 첫 연기상을 거머쥐며 그간의 긴 무명 생활과 가족을 향한 애틋한 속내를 전해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오랜 세월 이름보다 얼굴로 기억되던 그가 마침내 시상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존재는 단연 곁을 묵묵히 지켜준 가족이었다.
지난 20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몰라’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이날 방송에는 최근 개최된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 조연상을 수상한 유승목이 출연해 연기 인생과 삶의 궤적을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유승목은 근래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백 상무 역할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고히 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작품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조연으로 활약해 왔으나 정작 시상식 무대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시상식에 참석하는 일 자체가 본인의 삶과는 무관한 영역이라 여겼고, 시상식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조차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당시 백상예술대상 무대에서 그가 남긴 “상 받았다고 건방 떨지 않을 테니 계속 불러달라”는 수상 소감은 방송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식 없는 진심과 오랜 세월 현장을 지켜온 연기자의 절실함이 온전히 묻어난 까닭이다. 실제로 그는 화려한 스타의 삶을 누리기보다는 생계를 염려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고 고백했다.
1990년 연극 무대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오랜 무명 시절 동안 경제적 곤궁함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와 생업을 병행해야 했다. 말수가 적고 느린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텔레마케팅 업무에 도전했던 일화는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애잔함을 동시에 전했다. 배우라는 꿈 하나로 버텨온 나날이었지만 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는 버스나 택시에 붙은 드라마 광고를 바라보며 언젠가 본인의 얼굴도 저렇게 걸려 가족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랐던 순간을 회상해 뭉클함을 더했다.

무엇보다 이번 방송의 중심축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승목은 수상 직후 아내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던 순간을 기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상식이 끝난 후 통화를 시도했을 때 아내가 15분이 지나도록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는 일화는 부부가 함께 겪어온 세월의 무게를 짐작하게 했다. 이어 공개된 아내의 손편지에는 오랜 시간 남편의 길을 지지해 온 동반자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고,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그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극단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아내와의 남다른 연애담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얼마 전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 출연했을 당시에도 아내를 두고 “내 눈에는 오드리 헵번 같았다”고 표현하며 깊은 애정을 과시한 바 있다.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던 장모로 인해 장인이 혈압약을 찾았던 일화나 단칸방에서 시작해야 했던 신혼 생활은 화려함과 거리가 먼 고단한 청춘의 기록이었다. 그럼에도 유승목은 아내가 단 한순간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며 깊은 고마움을 표현했다.

두 딸이 전한 메시지 역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큰딸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장난감을 사는 대신 몸으로 즐겁게 놀아주던 아빠의 모습을 적어 내려간 편지는 그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유승목은 겨울철 언덕길에서 썰매를 끌어주고 날이 풀리면 냇가와 들판을 함께 뛰놀던 추억을 상기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을지라도 가족과 함께 쌓은 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풍성했다는 고백이었다.
더불어 큰딸이 촬영을 떠나는 아버지를 위해 식탁 위에 만 원권 두 장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라는 메모를 남겼던 일화를 소개하며 현재까지도 그 메모를 액자에 넣어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밝혀 먹먹함을 안겼다.
최근 ENA 드라마 '허수아비'에서 냉철한 정치인 차무진 역으로 변신해 색다른 면모를 선보이고 있는 유승목은 이제 본인의 이름을 대중의 마음속에 뚜렷이 새겨 넣고 있다. 화려한 스타성에 기대기보다 단단한 연기 내공으로 긴 세월을 인내해 온 이 배우의 발자취는 오랜 기다림 끝에 피어난 진정성이 지닌 가치를 명확히 증명해 보인다.
데뷔 37년 차에 접어든 연기자가 처음으로 거머쥔 트로피는 결국 독자적인 영광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고단한 무명의 터널을 함께 지나온 가족, 그리고 묵묵히 촬영장을 지켜온 헌신적인 시간들이 결합되어 빚어낸 가장 지체되었으나 가장 뜨거운 결실로 기록될 것이다.
사진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JTBC '제62회 백상예술대상', ENA 드라마 '허수아비'

















